유대인 방랑생활 - 디아스포라 (이산, 離散)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שְׁלֹמֹה)왕 사후에 유태인들의 왕국은 둘로 나뉩니다. 바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대왕국입니다. 기원전 722년 북쪽 이스라엘이 먼저 아시리아에게 멸망하고 601년 유대왕국 또한 신 바빌로니아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대인은 바빌론 유수를 겪게 됩니다. 바빌론 유수(幽囚) 이후 바빌론에 남아 정착한 유대인이 있고 일부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말하며 이후 유대인은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의 사례

디아스포라는 유대인 뿐만아니라 다음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 흩어진 집단
  •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
  • 혹은 현상 그 자체

 

다른 디아스포라의 예

  • 그리스 디아스포라
  • 흑인 디아스포라
  • 중국의 화교
  •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이주 (미국 하와이, 중국, 러시아, 일본)
  • 동남아 디아스포라 (일자리)

 

이스라엘 건국

 오스트리아의 기자 출신의 테오도르 헤르츨은 1897년 8월 29일 세계시온주의대회를 소집하여 이스라엘 건국에 기틀을 마련합니다. 이후 제 1차 세계대전 중 1917년 11월 2일 벨푸어 선언을 통해 영국 통치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설립할 수 있도록 입장을 밝힌 내용의 서한을 유대인 대표에게 보냅니다. 내용에 따르면 영국 전쟁을 돕는다면 이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나라를 설립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벨푸어 선언 원문

 

 

 

 이후에 팔레스타인 영토로 이주하는 유대인이 많이 늘어났고 이 벨푸어 선언은 영국이 미국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도록 하려 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1915년 벨푸어 선언이 있기 2년 전에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오스만 제국으로 부터 독립시켜주겠다는 맥마흔 선언을 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였으며, 아랍 왕국의 이집트의 후세인은 영국 헨리 맥마흔과 이와 같은 협상을 하게 됩니다.

 

 또한 맥마흔 선언과 벨푸어 선언 사이에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있었는데 영국과 프랑스간에 이루어진 협정으로 오스만 제국을 격파한 뒤에 중동의 세력권을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나눠 같기 위한 협정이 였습니다. 이 협정으로 오스만 제국의 아라비아 반도외에 아랍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의 지역으로 분할 했습니다. 이후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이 협정을 폭로하면서 모든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결과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 종전후 다시 발생한 2차 세계대전이 종결 된 시점인 1947년 유엔은 위의 맥마흔 선언과 벨푸어 선언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을 분할하고 아랍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됩니다. 이때 영토 분할로 인해 많은 팔레스타인이 소유한 땅이 유대인의 소유로 넘어가게 됩니다. 거의 50% 이상의 토지가 유대국가인 이스라엘의 소유가 됩니다. 결국 텔아비브에서 1948년 5월 14일 유대인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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